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EEC 전동차 (문단 편집) == 의의와 한계 == 우선, 이 차량의 의의라면 '''한국철도 사상 최초의 [[특급형 전동차]]'''였다는 것. 운행 당시에는 우등형 전동차로 운행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. 그리고 그만큼 수요도 뒷받침이 됐다. 다만 운행구간이 중앙-태백-영동선 뿐이었던 이유는 '''당시 [[경부선]]마저도 수원 이남은 비전철화 구간'''이었기 때문이다. 왜 하필 수원까지나면, [[수도권 전철 1호선|1호선]]이 있었기 때문이다. 그만큼 전철화에 신경을 안 썼기도 했었으니...불과 '''2000년대 초반까지의 일.'''[* 경부선의 경우 주요 간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원 이남 구간은 전철화가 되지 않았다가 2003년 수원~병점 구간, 2004년 KTX 개통을 앞두고 지천~부산 구간, 2005년 병점~천안, 천안~조치원 구간이, 잔여구간인 조치원~지천 구간은 2006년 12월에야 최종적으로 전철화되며 전 구간 전철화됐다.] 주력노선인 [[경부선]]에 디젤기관차만 주구장창 굴러다녔던 이유. [[경인선]]에나 1호선에서 보이는 그 흔한 전차선 카데나리가 [[수원역]]을 지나고 남쪽으로 간지 얼마 안 되어 '''뚝 끊겨 있었다.''' [[2003년]]의 [[병점역]] 연장이 한국 철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'''[[경부선]] 전철화'''였다.[* 그 이전에는 병점역 연장도 있지도 않았다. 병점 연장도 1990년대에 와서야 계획된 것이다.]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는 [[천안역]]까지 연장됐고, 또 1년이 더 지나고, 경원선 전철화까지 이루어졌다. [[경부선]]이 80년대에 이미 전철화됐다면 아마 이 차량의 후속형이 지금도 어디에선가 [[무궁화호]]로 굴러다니거나 새마을호를 PP디젤동차가 아니라 진작 부터 [[한국철도공사 210000호대 전동차|전기동차]]로 도입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. 어쩌면 KTX가 1990년대에 개통됐을 수도 있다[* 경부고속철도는 이미 70년대 말 부터 구상이 있었던데다 기존선을 개량하는 방안도 존재했으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닌 셈]. 물론 TGV 001의 영감을 바도 기존선을 고속화 시키고 디젤 고속열차를 굴렸을 가능성도 있지만 기름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일반석 조차 매우 비싼 말그대로 철도계의 콩코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.[* 지금 KTX 일반석 표 가격의 2~3배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.] 그리고 이때 국내 철도 기술자들은 이 차량을 열심히 연구하여 후일 [[8000호대 전기기관차]]도 재생해 내고, 저항제어 방식의 통근 전동열차의 개량 및 신규 제작하는 데 밑거름이 되게 된다.[* [[TEC 전동차]]는 또 일본에서 수입해 왔는데, 당시에는 엔화가 쌌고, [[히타치 제작소|히타치]]가 완제품을 직접 파는 방식이 아니고, 일부 부속을 [[SLS 중공업]]에 제공하여, SLS 중공업에서 최종 조립되는 방식이라 상당수의 전장품이 국산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완전한 일본산 열차는 아니다. 또한 [[한국철도공사]]는 히타치의 [[A-train(히타치)|A-train]]기술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.] 게다가 '''대한민국 최초'''로 싱글암 [[팬터그래프]]를 도입한 동력분산식 전동차이기도 하다.[[https://m.blog.naver.com/bf101/10102524312|사진 모음]] 보통 [[TEC]]부터 동력분산식 전동차에 최초로 도입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싱글암 팬터그래프가 최초로 적용된 전동차는 이 차량이다. 이 차량의 베이스가 일본 전동차 기술이었던 것과 달리, 먼저 도입된 [[8000호대 전기기관차]]처럼 유럽식 싱글암 팬터그래프를 채택했다. 더블암 팬터그래프를 채택한 원본 [[485계 전동차]]보다도 진보한 부분이다.[* 애초에 싱글암 팬터그래프 자체가 무려 '''1955년''' [[프랑스]] 훼브레 트랜스포트 (Faiveley Transport)사에서 개발한 물건이다. 고속 운전에 적극적인 [[SNCF]]의 경우 1960년대 후반 이후 싱글암 팬터그래프를 널리 쓰고 있었고, 프랑스와 직통운전을 하는 [[독일]](당시 서독), [[이탈리아]]도 도입하고 있었다. 반면 일본의 경우 1971년 [[케이한]] [[케이한 2600계 전동차|2000계]] 1량에 상술한 프랑스 훼브레의 싱글암 팬터그래프를 일본 최초로 도입했으나, 정식으로 채택되지는 못했다. 이후 훼브레 사의 특허가 만료된 1980년대 말 이후부터 일본 업체들도 싱글암 팬터그래프를 만들기 시작했고, [[오사카메트로 70계 전동차]]부터 싱글암 팬터그래프가 본격적으로 채택되기 시작했다. 따라서 EEC가 일본 전동차 베이스지만 싱글암 팬터그래프는 유럽식을 채택한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.] 다만 화장실이 비산식이었던 것이 문제였다. 정화조가 없기 때문이다. 이 상황은 곧 화장실을 사용하면 사용한 그 즉시 '''그대로 선로에 오물이 투척되는''' 방식이었다. 당대의 최신 기술을 적용하고도 [[동력분산식]] 전동차의 구조 문제상 어쩔 수 없이 정화조를 설치하지 못했다. 모터 부분의 문제로 동력차에 설치하지도 못했다. 물론 [[TEC 전동차]]부터 제조되는 차량들은 완전히 개선됐다. 또한 도입 당시 기준으로 한국철도의 전철화 부족도 문제였다. 위에 설명했듯 EEC는 한국철도 사상 최초의 중장거리 여객용 특급형 전동차로 그 기술적 가치는 형제기라 할수있는 DEC보다도 높았다고 할 수 있다. 그럼에도 새마을호로 도입되고 격하되고도 무궁화호로 운행한 DEC와 달리 EEC는 처음부터 무궁화호로 도입되고 나중에는 통일호까지 격하되는 등, 첫 도입부터 마지막까지도 DEC보다 낮은 등급으로 운행했던 것도 당시 전철화 구간이 많지 않아 DEC에 비해 투입할 수 있는 노선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